⓵ 내가 작사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2023년 11월, 작사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10개월이 지난 채로 나는 여전히 작사가 ‘지망생’이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학원 동기들이 굉장히 빠른 데뷔를 해내는 바람에 초조와 불안 속에 허덕이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달래 가며 없는 여유를 부리면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바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지금의 느긋한 속도감이 정말 괜찮은 건지, 업보가 되어 돌아오진 않을지 겁이 나긴 한다.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일념으로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무언가를 바삐 해나가던 지난 시간을 쌓아 올린 것이 바로 지금의 ‘나’라는 허무와 믿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도 평정을 찾아낸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와 몇 칸 떨어져 있는 천안, 그중에서도 ‘성환’이라는 소도시의 작사가 지망생으로서 오늘도 ‘꿈’이라는 자유투를 던지고 있다.
바야흐로 3년 전 여름, 코로나19 대유행기에 아무런 연고 없이 이곳에 갑작스럽게 정착하게 되었다.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르바이트였을 뿐이었지만 지출을 오롯이 감당해 주던 근무지에서 정리해고를 당했고, 대부분 사업장의 상황이 비슷해서 원하는 조건의 일을 다시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독립을 하고야 말겠노라 다짐한 지 2년 하고도 조금 더 흐른 시점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자식을 내보내고 수십 가지 이유를 대며 살던 집을 정리했다. 굳이 일을 멀리서 다닐 필요가 없으니, 당신의 직장이 위치한 성환으로 먼저 내려온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 부모님께서는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고양이 보러 오라며 나를 꼬드겼다. 고양이라니….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아닐 줄 알았던 우리 집에서 고양이라니. 며칠만 보고 다시 돌아가겠다는 다짐은 ‘하루만 더’, ‘하루만 더’를 외다가 어느 순간 무의미해졌다.
“한 번 빠지면 답이 없지. 어쩔 수 없어 태생인 걸”
(고양이 (Feat. 아이유), Song by 선우정아)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 때문이라니,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겨우 고양이가 이유가 될 정도로 나는 지쳐있었다. 서울에서 나에게 허락된 주거공간은 2평 남짓한 고시원 단칸방이 전부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꾸역꾸역 살아내면서 그마저도 지켜내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업과 경제활동을 병행해야 했고, 거절하지 못해 강행하게 된 봉사까지 했다. 과업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몸집이 불어난 상태였다. 그 어느 곳에서도 충분한 퍼포먼스가 나올 수 없었기에 늘 혼이 났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습관이 되었다. 나의 최선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좌절했다. 부끄럽게도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알지 못해서, 나만은 내 편이어야 한다는 삶의 대원칙을 몰라서, 조금씩 스스로를 죽여 갔던 것이다. 무기력한 날들은 점점 늘어갔다.
그 시점에서 만난 고양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잔뜩 겁을 먹고 이리저리 도망치던 녀석이 하루, 이틀이 지나니 슬금슬금 내 옆으로 다가와 살을 맞대고, 턱을 괴고, 책상 위로 올라와 훼방을 놓았다. 누군가가 나를 믿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흥미를 느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실망시킬까 봐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오랜만에 느낀 온전한 사랑이었다. 사랑이라 부르기엔 다소 거창한 것 같아도 나에게는 사랑이었다. 오랫동안 묵혀온 결핍이 내 방으로, 우리 집으로, 집 앞 카페로, 산책로로 조금씩 넓혀지면서 다채롭게 채워졌다. 외부의 기대가 늘 부담스러웠던 나에게도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만난 그날부터 매일 다르게 예쁜 걸”
(Eye 2 Eye, Song by 정세운)
내 방 창문을 열면 모든 것들이 쉽게 설명된다. 자연경관에 약한 나에게 이곳은 특히나 남다른 감흥이 있다. 정오와 해넘이의 하늘빛이 다르고, 계절에 따라 풀빛의 색깔이 다르다. 장마철이 지난 후의 맑게 갠 하늘과 짙은 녹음의 진짜 여름을 목도하고, 노을의 붉은빛이 창살을 넘어 만드는 볕의 무늬를 흠모한다. 계절의 가름선이 되는 벼들이 노랗게 익어갈 때 어둠이 깔리면 ‘까마귀는 없는 논밭’이 완성된다. 그 앞으로 보이는 철로까지도 조형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환이라는 동네가 읍인만큼 생활의 편의성에서는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온라인 쇼핑몰의 당일배송이나 배달어플의 한집배달 서비스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고, 재미있는 일은 대개 천안 시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그마저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한다. (나는 면허조차 없는 뚜벅이다.) 게다가 논밭이 많아서 날씨가 조금씩 풀리는 시점부터 쌀쌀해지기 전까지 은은한 비료향을 맡아야 한다. 환기를 하려면 후각을 포기해야 한다. 창은 북서향으로 나있어서, 더울 때는 더 덥고 추울 때는 더 추운 것 같다. 이런 불편한 환경이지만, 왠지 여기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것들이 자꾸 늘었다.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더는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싶지 않았다.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잃기 싫었고, 책임지게 된 한 생명을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별로 돌아가는 날까지 충분히 책임지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걸 잘하는 삶이 욕심났다.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아름아름 피어나던 마음, 작사였다.
“글 쓰는 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게 어때? 두서없는 글이었다지만 흡입력이 있다고 느꼈어. 그다음이 자꾸 궁금해지더라.”
당시 만나던 애인이 장난치면서 놀리려고 들춰본 다이어리에 끄적인 문장들을 보고 해준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던 좋아하는 교수님의 말씀이 마음 한 곳에 줄곧 남아 있었음을 발견했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산학협력으로 신문사에서 인턴을 하며 만났던 작사가와의 인터뷰에도 자꾸 의미를 두게 되었다. 제법 절묘하게 대동되었던 바, 운명 같은 게 아니었을까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잘 쓰인 가사에 줄곧 느꼈던 질투 어린 동경을 마주했다. 결정은 꽤나 충동적이었지만 언제가 되더라도 결국엔 하고 말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계속 고집했다면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까? 작사학원 앞을 지나쳐가면서도, 아쉬워만 하며 끝내 발을 돌렸을 것이다. 파트타임 근무로 생활비와 학원비만 딱 채워지는 조금은 위태로운 지금이지만, 언젠가는 의심스러운 이 재능이 99%의 노력 뒤에 붙어 길을 내주길 바란다. 이 삶이 지속될 수 있기를 꿈꾼다.
박영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천안으로 이주했다. 당시 비대면 수업이 본격화되자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서 천안에 먼저 자리 잡은 가족과 함께 살게 됐다. 작사가 지망생이자, 초중등 입시학원 강사로 생활하고 있다.
시리즈 소개
20대의 마지막 자락을 보낸 천안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담았다. 아무 연고 없이 외로운 시기를 보낸 것 같았지만, 곁에는 친근한 사람들과 장소가 생겼다. 방황 속에서도 작사가의 꿈을 놓지 않는 청춘의 일상을 노랫말과 함께 풀어냈다. 고민과 아픔을 진솔하게 쓴 ‘정서적 성장기’는 지역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낸다.
⓵ 내가 작사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2023년 11월, 작사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10개월이 지난 채로 나는 여전히 작사가 ‘지망생’이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학원 동기들이 굉장히 빠른 데뷔를 해내는 바람에 초조와 불안 속에 허덕이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달래 가며 없는 여유를 부리면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바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지금의 느긋한 속도감이 정말 괜찮은 건지, 업보가 되어 돌아오진 않을지 겁이 나긴 한다.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일념으로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무언가를 바삐 해나가던 지난 시간을 쌓아 올린 것이 바로 지금의 ‘나’라는 허무와 믿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도 평정을 찾아낸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와 몇 칸 떨어져 있는 천안, 그중에서도 ‘성환’이라는 소도시의 작사가 지망생으로서 오늘도 ‘꿈’이라는 자유투를 던지고 있다.
바야흐로 3년 전 여름, 코로나19 대유행기에 아무런 연고 없이 이곳에 갑작스럽게 정착하게 되었다.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르바이트였을 뿐이었지만 지출을 오롯이 감당해 주던 근무지에서 정리해고를 당했고, 대부분 사업장의 상황이 비슷해서 원하는 조건의 일을 다시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독립을 하고야 말겠노라 다짐한 지 2년 하고도 조금 더 흐른 시점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자식을 내보내고 수십 가지 이유를 대며 살던 집을 정리했다. 굳이 일을 멀리서 다닐 필요가 없으니, 당신의 직장이 위치한 성환으로 먼저 내려온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 부모님께서는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고양이 보러 오라며 나를 꼬드겼다. 고양이라니….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아닐 줄 알았던 우리 집에서 고양이라니. 며칠만 보고 다시 돌아가겠다는 다짐은 ‘하루만 더’, ‘하루만 더’를 외다가 어느 순간 무의미해졌다.
“한 번 빠지면 답이 없지. 어쩔 수 없어 태생인 걸”
(고양이 (Feat. 아이유), Song by 선우정아)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 때문이라니,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겨우 고양이가 이유가 될 정도로 나는 지쳐있었다. 서울에서 나에게 허락된 주거공간은 2평 남짓한 고시원 단칸방이 전부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꾸역꾸역 살아내면서 그마저도 지켜내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업과 경제활동을 병행해야 했고, 거절하지 못해 강행하게 된 봉사까지 했다. 과업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몸집이 불어난 상태였다. 그 어느 곳에서도 충분한 퍼포먼스가 나올 수 없었기에 늘 혼이 났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습관이 되었다. 나의 최선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좌절했다. 부끄럽게도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알지 못해서, 나만은 내 편이어야 한다는 삶의 대원칙을 몰라서, 조금씩 스스로를 죽여 갔던 것이다. 무기력한 날들은 점점 늘어갔다.
그 시점에서 만난 고양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잔뜩 겁을 먹고 이리저리 도망치던 녀석이 하루, 이틀이 지나니 슬금슬금 내 옆으로 다가와 살을 맞대고, 턱을 괴고, 책상 위로 올라와 훼방을 놓았다. 누군가가 나를 믿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흥미를 느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실망시킬까 봐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오랜만에 느낀 온전한 사랑이었다. 사랑이라 부르기엔 다소 거창한 것 같아도 나에게는 사랑이었다. 오랫동안 묵혀온 결핍이 내 방으로, 우리 집으로, 집 앞 카페로, 산책로로 조금씩 넓혀지면서 다채롭게 채워졌다. 외부의 기대가 늘 부담스러웠던 나에게도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만난 그날부터 매일 다르게 예쁜 걸”
(Eye 2 Eye, Song by 정세운)
내 방 창문을 열면 모든 것들이 쉽게 설명된다. 자연경관에 약한 나에게 이곳은 특히나 남다른 감흥이 있다. 정오와 해넘이의 하늘빛이 다르고, 계절에 따라 풀빛의 색깔이 다르다. 장마철이 지난 후의 맑게 갠 하늘과 짙은 녹음의 진짜 여름을 목도하고, 노을의 붉은빛이 창살을 넘어 만드는 볕의 무늬를 흠모한다. 계절의 가름선이 되는 벼들이 노랗게 익어갈 때 어둠이 깔리면 ‘까마귀는 없는 논밭’이 완성된다. 그 앞으로 보이는 철로까지도 조형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환이라는 동네가 읍인만큼 생활의 편의성에서는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온라인 쇼핑몰의 당일배송이나 배달어플의 한집배달 서비스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고, 재미있는 일은 대개 천안 시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그마저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한다. (나는 면허조차 없는 뚜벅이다.) 게다가 논밭이 많아서 날씨가 조금씩 풀리는 시점부터 쌀쌀해지기 전까지 은은한 비료향을 맡아야 한다. 환기를 하려면 후각을 포기해야 한다. 창은 북서향으로 나있어서, 더울 때는 더 덥고 추울 때는 더 추운 것 같다. 이런 불편한 환경이지만, 왠지 여기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것들이 자꾸 늘었다.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더는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싶지 않았다.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잃기 싫었고, 책임지게 된 한 생명을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별로 돌아가는 날까지 충분히 책임지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걸 잘하는 삶이 욕심났다.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아름아름 피어나던 마음, 작사였다.
“글 쓰는 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게 어때? 두서없는 글이었다지만 흡입력이 있다고 느꼈어. 그다음이 자꾸 궁금해지더라.”
당시 만나던 애인이 장난치면서 놀리려고 들춰본 다이어리에 끄적인 문장들을 보고 해준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던 좋아하는 교수님의 말씀이 마음 한 곳에 줄곧 남아 있었음을 발견했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산학협력으로 신문사에서 인턴을 하며 만났던 작사가와의 인터뷰에도 자꾸 의미를 두게 되었다. 제법 절묘하게 대동되었던 바, 운명 같은 게 아니었을까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잘 쓰인 가사에 줄곧 느꼈던 질투 어린 동경을 마주했다. 결정은 꽤나 충동적이었지만 언제가 되더라도 결국엔 하고 말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계속 고집했다면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까? 작사학원 앞을 지나쳐가면서도, 아쉬워만 하며 끝내 발을 돌렸을 것이다. 파트타임 근무로 생활비와 학원비만 딱 채워지는 조금은 위태로운 지금이지만, 언젠가는 의심스러운 이 재능이 99%의 노력 뒤에 붙어 길을 내주길 바란다. 이 삶이 지속될 수 있기를 꿈꾼다.
박영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천안으로 이주했다. 당시 비대면 수업이 본격화되자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서 천안에 먼저 자리 잡은 가족과 함께 살게 됐다. 작사가 지망생이자, 초중등 입시학원 강사로 생활하고 있다.
시리즈 소개
20대의 마지막 자락을 보낸 천안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담았다. 아무 연고 없이 외로운 시기를 보낸 것 같았지만, 곁에는 친근한 사람들과 장소가 생겼다. 방황 속에서도 작사가의 꿈을 놓지 않는 청춘의 일상을 노랫말과 함께 풀어냈다. 고민과 아픔을 진솔하게 쓴 ‘정서적 성장기’는 지역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