⓸ 나의 또 다른 이름, 학원 강사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을 꼭 해야 한단다. 나에게는 완성된 가사지 한 편을 만드는 것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오랜 시간 글감, 구성, 표현 등을 고민하는 일이 하기 싫은 일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그냥 이거 할게요ㅠㅠ’하고 빌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바로 경제활동이다. 자본주의 시장을 언급하자니 속물적이지만 꿈을 꾸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가난하면 꿈도 꾸지 말라는 건가! 유치하고 원초적인 불만도 잠시, 벌이를 위한 꿈에 붙이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느 날 기적처럼 나만의 메디치(중세 말 근대 초기에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의 유명 가문으로 문화와 예술의 든든한 후원자)가 나타나주길 상상했지만 어림없는 소리.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정통이 가장 속 편한 일이다.
내가 그러하듯 작사를 배우는 동료들에게도 대부분 ‘현생’이라고 일컫는 직업이 있다. 현생을 살기에도 빠듯한 그들에게 파트타이머인 자신을 견줄 수는 없지만 말이다. 능수능란한 멀티플레이어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하다. 자아실현이라는 과제에 모든 에너지를 전부 배팅하기엔 돌아봐야 할 것들이 많다. 꾸준히 등장하는 내 막무가내 껌딱지 고양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돌보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는 나 자신이 있다.
이다지도 시시한 것들을 붙잡는 이유는 성장기 내내 지지와 사랑을 보냈던 외조부와의 사별이 큰 계기가 되었다. 나는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볼 수 없을 만큼 오롯이 성장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나밖에 몰랐다. 아쉬운 지난 모든 순간에 그 나름의 의미를 붙이며 흘려보낼 수 있게 됐지만, 지금까지도 되돌리고 싶은 한 순간은 그의 임종에 참여하지 못했던 2017년 5월 10일, 그의 아흔 번째 생일이자 기일이다. 그때부터 사랑을 맨 뒤에 두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손에 꼽힐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약간 빠듯하지만 지금의 삶을 지탱해 줄 수입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내며 꿈을 좇을 수 있는 시간도 있다. 하기 싫은 경제활동이지만 그 나름의 재미와 보람도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냐는 질문에 때때로 작사가 지망생임을 밝히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보편적이지 않은 만큼 정해진 질문과 설명을 주고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이 귀찮아서 솔직하게 말하기를 주저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꺼내는 단정한 방패 같은 말이 있다.
“저 학원에서 초중등부 학생들 봐주고 있어요!”
처음 학원에서 일하게 되었던 건 2022년 3월이었다. 교육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원하는 조건을 맞추다 보니 학원이었다. 첫 학원을 그만두고 다른 일도 잠깐 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학원이다. 적성에 찰떡같이 맞아서 ‘만족도 100%!!’인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작사를 하면서 포기했던 사회적 인정욕구를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것으로 제법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약한 나에게 여러 이름들은 적당한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좋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믿지 않았는데, 지금을 위한 빌드업이었다고 퉁 쳐본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운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일터로 오게 된 건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이다. 전에 일했던 학원과 비교해 조건이 나아 이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역마살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가까운 곳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기에 도보로 5분 거리라는 출근시간이 너무 강력했다. 될까 싶었는데 좋게 봐줬다. 이 조각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근무지를 옮긴 덕분이어서 모든 것들이 마치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전 학원은 학생들의 학구열이 높고 중등부의 비율이 높았던 것에 비해 지금의 학원은 순수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초등학생 위주로 구성되었다. 첫 출근 날 교실에 들어섰을 때 아이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환대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격했다.
그만큼 구체적이고 세심한 학습지도가 필요해 남다른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시간 동안 벌써 몇 명을 울리고, 성질에 못 이겨 화도 냈지만 아이들은 다행히 잊어주고 부끄럽게도 먼저 사과해 준다. 아이들이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이끈다. 아이들이란 말을 잘 듣지 않는 존재들이므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있기 일쑤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럽다. 어차피 사랑이 이긴다는 말마따나 책임감이 주는 부담보다는 순수한 마음이 주는 기쁨이 더 크다.
“왜 이렇게 자꾸 말썽을 피워?! 내가 그렇게 좋아?”
“히히, 네”
“우웩! 아닌데요?”
이렇게 발칙한 질문을 어디에서 할 수 있을까. 현실은 각박하다지만 이곳은 제법 명랑만화스럽다. 시골 사람들은 순박하다는 무례한 선입견이 강화될 정도로 밝고 따뜻하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푼다면 어떤 형태로든 네게 돌아올 거야. 마음이 될 수도 있고, 재화가 될 수도 있고. 손해라는 개념은 없어.’ 웹툰 <대신 심부름을 해다오>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여운이 강해서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독자로서 던져 받은 메시지와는 별개로 멋대로 미시적이게 해석했다. 지금까지 낭비했다고 느낀 시간과 노력들이 결코 0이거나 마이너스는 아닐 거라고, 미래의 어느 날에는 의미를 가지고 무언가를 건네줄 거라고 말이다. 서울살이의 실패가 준 좌절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암실이 되었고, 쓸모를 못 느끼며 억지로 해냈던 학업은 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지탱해주고 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침이 밝으면 다시 출근하기 싫어 현실을 부정하고 징징댈 것이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여유 없는 출근길에 오르게 되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주말이 없는 작사와 달리 학원은 주말이 있다! 또 버틸 만 하다. 돌려받을 마음과 재화가 있다. 가자, 일터로!
박영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천안으로 이주했다. 당시 비대면 수업이 본격화되자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서 천안에 먼저 자리 잡은 가족과 함께 살게 됐다. 작사가 지망생이자, 초중등 입시학원 강사로 생활하고 있다.
시리즈 소개
20대의 마지막 자락을 보낸 천안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담았다. 아무 연고 없이 외로운 시기를 보낸 것 같았지만, 곁에는 친근한 사람들과 장소가 생겼다. 방황 속에서도 작사가의 꿈을 놓지 않는 청춘의 일상을 노랫말과 함께 풀어냈다. 고민과 아픔을 진솔하게 쓴 ‘정서적 성장기’는 지역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낸다.
⓸ 나의 또 다른 이름, 학원 강사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을 꼭 해야 한단다. 나에게는 완성된 가사지 한 편을 만드는 것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오랜 시간 글감, 구성, 표현 등을 고민하는 일이 하기 싫은 일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그냥 이거 할게요ㅠㅠ’하고 빌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바로 경제활동이다. 자본주의 시장을 언급하자니 속물적이지만 꿈을 꾸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가난하면 꿈도 꾸지 말라는 건가! 유치하고 원초적인 불만도 잠시, 벌이를 위한 꿈에 붙이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느 날 기적처럼 나만의 메디치(중세 말 근대 초기에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의 유명 가문으로 문화와 예술의 든든한 후원자)가 나타나주길 상상했지만 어림없는 소리.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정통이 가장 속 편한 일이다.
내가 그러하듯 작사를 배우는 동료들에게도 대부분 ‘현생’이라고 일컫는 직업이 있다. 현생을 살기에도 빠듯한 그들에게 파트타이머인 자신을 견줄 수는 없지만 말이다. 능수능란한 멀티플레이어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하다. 자아실현이라는 과제에 모든 에너지를 전부 배팅하기엔 돌아봐야 할 것들이 많다. 꾸준히 등장하는 내 막무가내 껌딱지 고양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돌보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는 나 자신이 있다.
이다지도 시시한 것들을 붙잡는 이유는 성장기 내내 지지와 사랑을 보냈던 외조부와의 사별이 큰 계기가 되었다. 나는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볼 수 없을 만큼 오롯이 성장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나밖에 몰랐다. 아쉬운 지난 모든 순간에 그 나름의 의미를 붙이며 흘려보낼 수 있게 됐지만, 지금까지도 되돌리고 싶은 한 순간은 그의 임종에 참여하지 못했던 2017년 5월 10일, 그의 아흔 번째 생일이자 기일이다. 그때부터 사랑을 맨 뒤에 두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손에 꼽힐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약간 빠듯하지만 지금의 삶을 지탱해 줄 수입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내며 꿈을 좇을 수 있는 시간도 있다. 하기 싫은 경제활동이지만 그 나름의 재미와 보람도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냐는 질문에 때때로 작사가 지망생임을 밝히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보편적이지 않은 만큼 정해진 질문과 설명을 주고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이 귀찮아서 솔직하게 말하기를 주저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꺼내는 단정한 방패 같은 말이 있다.
“저 학원에서 초중등부 학생들 봐주고 있어요!”
처음 학원에서 일하게 되었던 건 2022년 3월이었다. 교육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원하는 조건을 맞추다 보니 학원이었다. 첫 학원을 그만두고 다른 일도 잠깐 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학원이다. 적성에 찰떡같이 맞아서 ‘만족도 100%!!’인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작사를 하면서 포기했던 사회적 인정욕구를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것으로 제법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약한 나에게 여러 이름들은 적당한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좋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믿지 않았는데, 지금을 위한 빌드업이었다고 퉁 쳐본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운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일터로 오게 된 건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이다. 전에 일했던 학원과 비교해 조건이 나아 이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역마살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가까운 곳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기에 도보로 5분 거리라는 출근시간이 너무 강력했다. 될까 싶었는데 좋게 봐줬다. 이 조각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근무지를 옮긴 덕분이어서 모든 것들이 마치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전 학원은 학생들의 학구열이 높고 중등부의 비율이 높았던 것에 비해 지금의 학원은 순수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초등학생 위주로 구성되었다. 첫 출근 날 교실에 들어섰을 때 아이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환대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격했다.
그만큼 구체적이고 세심한 학습지도가 필요해 남다른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시간 동안 벌써 몇 명을 울리고, 성질에 못 이겨 화도 냈지만 아이들은 다행히 잊어주고 부끄럽게도 먼저 사과해 준다. 아이들이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이끈다. 아이들이란 말을 잘 듣지 않는 존재들이므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있기 일쑤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럽다. 어차피 사랑이 이긴다는 말마따나 책임감이 주는 부담보다는 순수한 마음이 주는 기쁨이 더 크다.
“왜 이렇게 자꾸 말썽을 피워?! 내가 그렇게 좋아?”
“히히, 네”
“우웩! 아닌데요?”
이렇게 발칙한 질문을 어디에서 할 수 있을까. 현실은 각박하다지만 이곳은 제법 명랑만화스럽다. 시골 사람들은 순박하다는 무례한 선입견이 강화될 정도로 밝고 따뜻하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푼다면 어떤 형태로든 네게 돌아올 거야. 마음이 될 수도 있고, 재화가 될 수도 있고. 손해라는 개념은 없어.’ 웹툰 <대신 심부름을 해다오>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여운이 강해서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독자로서 던져 받은 메시지와는 별개로 멋대로 미시적이게 해석했다. 지금까지 낭비했다고 느낀 시간과 노력들이 결코 0이거나 마이너스는 아닐 거라고, 미래의 어느 날에는 의미를 가지고 무언가를 건네줄 거라고 말이다. 서울살이의 실패가 준 좌절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암실이 되었고, 쓸모를 못 느끼며 억지로 해냈던 학업은 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지탱해주고 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침이 밝으면 다시 출근하기 싫어 현실을 부정하고 징징댈 것이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여유 없는 출근길에 오르게 되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주말이 없는 작사와 달리 학원은 주말이 있다! 또 버틸 만 하다. 돌려받을 마음과 재화가 있다. 가자, 일터로!
박영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천안으로 이주했다. 당시 비대면 수업이 본격화되자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서 천안에 먼저 자리 잡은 가족과 함께 살게 됐다. 작사가 지망생이자, 초중등 입시학원 강사로 생활하고 있다.
시리즈 소개
20대의 마지막 자락을 보낸 천안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담았다. 아무 연고 없이 외로운 시기를 보낸 것 같았지만, 곁에는 친근한 사람들과 장소가 생겼다. 방황 속에서도 작사가의 꿈을 놓지 않는 청춘의 일상을 노랫말과 함께 풀어냈다. 고민과 아픔을 진솔하게 쓴 ‘정서적 성장기’는 지역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