⓸ 천안시 구도심과 허송세월
“고향이 어디예요?”라고 묻는 질문에 오래 머뭇거리게 된다. 천안에서 가장 오래 살았지만, 천안이라 말하기엔 어색한 느낌이 든다. ‘고향’이란 말을 떠올렸을 때 모락모락 피어나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동네와 오래된 집, 친구들과 뛰어놀던 정겨운 골목과 이웃들. 천안은 그런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천안은 충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우리 가족이 천안으로 이사 왔던 1999년은 그야말로 도시 개발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였다. 이사 간 집 역시도 갓 세워진 복도식 아파트였다. 살고 있는 집 오른편엔 새로 생긴 아파트와 동네들이 빼곡히 들어섰고 왼편에는 미처 아파트를 세우지 못한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 동네에 살며 논밭이 차근차근 아파트로 변화하는 풍경을 보면서 자랐다.
11살 나이에도 이 도시의 풍경은 낯선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서울 상도동,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따라 빼곡하게 집이 펼쳐지는 산동네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문도 없던 집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 학교 끝나면 자연스럽게 공터에 모여 놀던 친구들, 뒷산과 언덕에서 흙 만지며 놀던 기억들은 모조리 서울의 것이다.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그 산동네에 있었다. 천안에 와서 보니 낡은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새 아파트, 새 놀이터, 새 학교였다. 서울에선 고무줄놀이를 했는데 천안 애들은 그런 걸 할 줄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서울 살던 촌티(?)를 내지 않으려고 한동안은 애를 썼다.
이 도시에서 늘 벗어나고 싶었다. 도시의 세련됨이 정말이지 재미가 없었다. 천안에서 우연히 재미난 골목을 마주쳤다. 구도심이라고 불리는 천안역 인근 지역엔 아직도 옛날 건물을 사용하는 오래된 상점들이 있었다. 옛날 번화했던 시절의 간판, 인테리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가게들도 있었다. 획일적으로 만들어지는 건물과는 다르게 개성 있고 재미있는 골목이었다.
친구와 원도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맘에 드는 공간을 만났다. ‘미술라사’라는 양복집 간판이 걸려있는 2층 건물이었다. 간판은 양복점이었지만 가게 안의 벽이나 미싱, 옷들이 잔뜩 널려있던 걸 보니 수선집을 운영한 뒤에 오래 멈춰있던 공간 같았다. 천안에 살지 않는 집주인을 수소문해 가게 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가게는 발 디딜 틈 없이 지저분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오래된 나무 창문틀의 색감, 숨어있는 다락방 벽장 공간, 요새는 쉽게 볼 수 없는 멋진 무늬의 타일이었다. 단숨에 반해버린 나는 친구와 무모하게 이 공간에 가게를 냈다.
가게 이름은 ‘허송세월’, 책방이었다. 책방이 하고 싶었던 것도, 책을 열심히 팔 자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골목에 공간을 내 보고 싶었다. 책방을 그럴싸하게 만들면 사람들이 올까 싶었지만,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오진 않았다. 대신 친구들이 많이 왔다. 친구들이 오면 가게를 비우고 5분 거리의 시장에 나갔다. 만두가게, 빵집, 분식점이나 과일가게에 들러 간식거리를 잔뜩 사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책방의 일이었다. 허송세월이라는 이름을 허투루 짓지 않은 거다.
그 골목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너부리 아저씨라 부르던, 매일 골목에서 주차단속을 하던 성질이 더럽지만 묘하게 친절했던 아저씨, 자신은 쓸 일이 없다며 문화카드를 내게 주며 책을 사보라던 아저씨(여기 책방인데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양복 깔맞춤을 입고 다니던 멋쟁이 할아버지. 바로 옆 골목엔 누가 입거나 쓰던 옷이나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주로 외국인 이주민들이 많이 찾았다. 쓸모없는 것들이 모여서 쓸모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늘 새로운 낡은 것들이 채워지는 동네였다. 그 거리는 매일 걸어도 눈이 돌아갈 만큼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그 동네의 큰 손이자, 쇼핑 왕이 바로 나였다.
낡은 것을 사랑했지만, 허송세월은 너무 낡아서 망했다. 겨울이 되면 벽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다. 멋지게만 보였던 나무 창틀은 그야말로 바람구멍이었다. 중앙시장에서 비닐을 잔뜩 사서 틈을 막아 봐도, 바람들이 다 삐져 들어왔다. 샷시를 좋은 것으로 바꾸면 조금 낫겠지만 집주인은 이 건물을 고쳐주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켜두었던, 기름 값이 주룩주룩 새어나가는 것을 멈추는 일이었다. 나의 허송세월은 겨울에 끝이 났다. 가끔은 ‘지금 허송세월을 다시 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시렵던 기억이 찬바람처럼 쌩하니 든다.
게다가 이제는 해보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얼마 전 그 골목 앞을 가보니 구 허송세월 건물 앞에 커다랗게 x표가 쳐져있다. 주변의 많은 가게들도 역시 그랬다. 형편이 되는 몇 가게들에나 이전 표시가 있고, 대부분은 나가거나 겨우 버티고 있는 듯했다.
얼마 남지 않은 골목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살게 될까. 너부리 아저씨는, 양복을 깔맞춤으로 차려입던 할아버지는, 고물 자전거를 타던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게 될까. 가난에 틈을 내어주지 않는 도시는 나중에 어떤 모습이 될까. 골목과 골목, 오래된 이야기가 있던 동네들을 싹 밀어버리고, 겨우 아파트나 들어서겠지. 더 높게 똑같은 모양으로. 그런 걸 생각하면 이 도시가 아득하게 싫어진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 도시가 싫어질 때마다 골목을 찾아 걷는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언덕이 있는 주택동네다.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면서 천안에도 언덕이 있는 동네가 남아있다는 걸 알았다. 역시나 오른편에는 새로 생긴 아파트가 있고, 멀지 않은 곳에 또 새 아파트를 짓고 있다. 아주 조그마한 틈에 아직 밀리지 않은 숨은 동네.
근처엔 작은 천이 있어서 산책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동네들을 만난다. 걷다가 ‘어, 느낌이 좋은데?’하며 들어간 동네들은 어김없이 재개발의 옷을 입고 있다. 아무래도 재개발이 취향인가 보다. 사람이 비어있는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둔다. 배웅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고향이었을 골목을 남긴다. 마음이 쓸쓸해진다. 아무래도 내 고향의 자리를 천안에게 내어주진 못할 것 같다.
박소산
천안에서 디자인공으로 일한다. 맥주를 좋아하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특히 인스타그램으로 장문의 글을 남기는 걸 즐긴다. 친구들과 재미난 일을 벌이면서 지역에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시리즈 소개
천안, 서천, 예산 등 충남의 다양한 지역에서 살며, 머무르며, 관찰하며 지내왔던 집과 공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잘 알려진 특별한 여행지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공간은 기록될만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관계 맺고 있는 주변을 관찰하고 엮으면서 지역과 장소에 대한 고민을 녹여냈다.
⓸ 천안시 구도심과 허송세월
“고향이 어디예요?”라고 묻는 질문에 오래 머뭇거리게 된다. 천안에서 가장 오래 살았지만, 천안이라 말하기엔 어색한 느낌이 든다. ‘고향’이란 말을 떠올렸을 때 모락모락 피어나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동네와 오래된 집, 친구들과 뛰어놀던 정겨운 골목과 이웃들. 천안은 그런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천안은 충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우리 가족이 천안으로 이사 왔던 1999년은 그야말로 도시 개발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였다. 이사 간 집 역시도 갓 세워진 복도식 아파트였다. 살고 있는 집 오른편엔 새로 생긴 아파트와 동네들이 빼곡히 들어섰고 왼편에는 미처 아파트를 세우지 못한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 동네에 살며 논밭이 차근차근 아파트로 변화하는 풍경을 보면서 자랐다.
11살 나이에도 이 도시의 풍경은 낯선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서울 상도동,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따라 빼곡하게 집이 펼쳐지는 산동네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문도 없던 집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 학교 끝나면 자연스럽게 공터에 모여 놀던 친구들, 뒷산과 언덕에서 흙 만지며 놀던 기억들은 모조리 서울의 것이다.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그 산동네에 있었다. 천안에 와서 보니 낡은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새 아파트, 새 놀이터, 새 학교였다. 서울에선 고무줄놀이를 했는데 천안 애들은 그런 걸 할 줄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서울 살던 촌티(?)를 내지 않으려고 한동안은 애를 썼다.
이 도시에서 늘 벗어나고 싶었다. 도시의 세련됨이 정말이지 재미가 없었다. 천안에서 우연히 재미난 골목을 마주쳤다. 구도심이라고 불리는 천안역 인근 지역엔 아직도 옛날 건물을 사용하는 오래된 상점들이 있었다. 옛날 번화했던 시절의 간판, 인테리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가게들도 있었다. 획일적으로 만들어지는 건물과는 다르게 개성 있고 재미있는 골목이었다.
친구와 원도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맘에 드는 공간을 만났다. ‘미술라사’라는 양복집 간판이 걸려있는 2층 건물이었다. 간판은 양복점이었지만 가게 안의 벽이나 미싱, 옷들이 잔뜩 널려있던 걸 보니 수선집을 운영한 뒤에 오래 멈춰있던 공간 같았다. 천안에 살지 않는 집주인을 수소문해 가게 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가게는 발 디딜 틈 없이 지저분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오래된 나무 창문틀의 색감, 숨어있는 다락방 벽장 공간, 요새는 쉽게 볼 수 없는 멋진 무늬의 타일이었다. 단숨에 반해버린 나는 친구와 무모하게 이 공간에 가게를 냈다.
가게 이름은 ‘허송세월’, 책방이었다. 책방이 하고 싶었던 것도, 책을 열심히 팔 자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골목에 공간을 내 보고 싶었다. 책방을 그럴싸하게 만들면 사람들이 올까 싶었지만,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오진 않았다. 대신 친구들이 많이 왔다. 친구들이 오면 가게를 비우고 5분 거리의 시장에 나갔다. 만두가게, 빵집, 분식점이나 과일가게에 들러 간식거리를 잔뜩 사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책방의 일이었다. 허송세월이라는 이름을 허투루 짓지 않은 거다.
그 골목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너부리 아저씨라 부르던, 매일 골목에서 주차단속을 하던 성질이 더럽지만 묘하게 친절했던 아저씨, 자신은 쓸 일이 없다며 문화카드를 내게 주며 책을 사보라던 아저씨(여기 책방인데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양복 깔맞춤을 입고 다니던 멋쟁이 할아버지. 바로 옆 골목엔 누가 입거나 쓰던 옷이나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주로 외국인 이주민들이 많이 찾았다. 쓸모없는 것들이 모여서 쓸모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늘 새로운 낡은 것들이 채워지는 동네였다. 그 거리는 매일 걸어도 눈이 돌아갈 만큼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그 동네의 큰 손이자, 쇼핑 왕이 바로 나였다.
낡은 것을 사랑했지만, 허송세월은 너무 낡아서 망했다. 겨울이 되면 벽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다. 멋지게만 보였던 나무 창틀은 그야말로 바람구멍이었다. 중앙시장에서 비닐을 잔뜩 사서 틈을 막아 봐도, 바람들이 다 삐져 들어왔다. 샷시를 좋은 것으로 바꾸면 조금 낫겠지만 집주인은 이 건물을 고쳐주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켜두었던, 기름 값이 주룩주룩 새어나가는 것을 멈추는 일이었다. 나의 허송세월은 겨울에 끝이 났다. 가끔은 ‘지금 허송세월을 다시 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시렵던 기억이 찬바람처럼 쌩하니 든다.
게다가 이제는 해보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얼마 전 그 골목 앞을 가보니 구 허송세월 건물 앞에 커다랗게 x표가 쳐져있다. 주변의 많은 가게들도 역시 그랬다. 형편이 되는 몇 가게들에나 이전 표시가 있고, 대부분은 나가거나 겨우 버티고 있는 듯했다.
얼마 남지 않은 골목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살게 될까. 너부리 아저씨는, 양복을 깔맞춤으로 차려입던 할아버지는, 고물 자전거를 타던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게 될까. 가난에 틈을 내어주지 않는 도시는 나중에 어떤 모습이 될까. 골목과 골목, 오래된 이야기가 있던 동네들을 싹 밀어버리고, 겨우 아파트나 들어서겠지. 더 높게 똑같은 모양으로. 그런 걸 생각하면 이 도시가 아득하게 싫어진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 도시가 싫어질 때마다 골목을 찾아 걷는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언덕이 있는 주택동네다.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면서 천안에도 언덕이 있는 동네가 남아있다는 걸 알았다. 역시나 오른편에는 새로 생긴 아파트가 있고, 멀지 않은 곳에 또 새 아파트를 짓고 있다. 아주 조그마한 틈에 아직 밀리지 않은 숨은 동네.
근처엔 작은 천이 있어서 산책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동네들을 만난다. 걷다가 ‘어, 느낌이 좋은데?’하며 들어간 동네들은 어김없이 재개발의 옷을 입고 있다. 아무래도 재개발이 취향인가 보다. 사람이 비어있는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둔다. 배웅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고향이었을 골목을 남긴다. 마음이 쓸쓸해진다. 아무래도 내 고향의 자리를 천안에게 내어주진 못할 것 같다.
박소산
천안에서 디자인공으로 일한다. 맥주를 좋아하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특히 인스타그램으로 장문의 글을 남기는 걸 즐긴다. 친구들과 재미난 일을 벌이면서 지역에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시리즈 소개
천안, 서천, 예산 등 충남의 다양한 지역에서 살며, 머무르며, 관찰하며 지내왔던 집과 공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잘 알려진 특별한 여행지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공간은 기록될만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관계 맺고 있는 주변을 관찰하고 엮으면서 지역과 장소에 대한 고민을 녹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