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가 잇는 충남]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물건들을 소개합니다.
-공주 데스크 소품샵 <단편선>
오래도록 읽고 싶었던 책의 첫 장을 펼치는 설렘,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제멋대로 잔뜩 부풀어버리고 만다. 그 안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같은 생각만으로 가득 차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은 잠시 내쫓긴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이야기를 굽어보고, 헤쳐보고 때로는 만져보기도 하는 몰입의 짜릿함을 떠올려 보자. 내 삶의 여정과 닮아있는, 혹은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누군가의 기록에 삶의 진폭은 대부분은 모르는 새, 아주 가끔은 눈에 띄게 커져 있었다.
같은 마음으로 한 상점의 문을 두드린다. 종이처럼 하얀 벽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를 배경으로 다양한 소품들은 정돈된 듯 단정하게 놓여있다. 창밖으로 비치는 풍경은 삽화처럼 그 안을 꾸미고 있었다. 이 공간에 붙여진 이름은 <단편선>이다. 이들이 엮여 만들어진 이야기는 무얼까 한참 바라보며 해석해 보는 것도 좋지만, 곧바로 이 작품의 지은이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제1장 표현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단편선은 이런 곳이다!”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공주 구도심에서 “단편선”을 운영하는 진예은이라고 합니다. 단편선은 기록의 도구인 문구를 기반으로 라이프스타일 제품들을 제안하고 판매하는 상점이에요. 작은 이야기를 가진 물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각각의 이야기가 담긴 사물들이 한데 모여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기록의 도구로서 문구라.. 시선에 힌트가 있는 듯싶은데요, 기록이 예은 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나 봐요!
저는 오래전부터 수집광이었어요. 친구와 주고받았던 작은 쪽지나 공연 티켓, 여행지의 영수증 같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다 모을 정도로요. 추억이나 특별한 순간도 마찬가지로 놓치지 않고 모으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이런 작은 조각들을 노트에 붙이고 그날을 일기나 그림으로 남기는 거죠.
일상을 기록하는 또 다른 방법도 있을 것 같아요.
돌아보니 벌써 햇수로 9년이나 되었네요. 더욱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날은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요. 필름 가격이 인상된 이후로는 전처럼 자주 찍지는 못하지만요. 셔터를 누를 때 신중하고 집중하게 되는 만큼 필름 사진에는 그날의 분위기가 그대로 실리더라고요. 잘 나오지 못해도 소중한 이유가 되어줍니다.
아! 그리고 이건 정말 저만의 방식일 텐데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작은 노트를 항상 지니고 다녀요. 카페나 대중교통 등 자투리 시간에 그날 떠오르는 몇 가지 포인트들을 그림으로 그리곤 해요. 투박한 그림이지만 그때 그 순간이 가장 생생하게 잘 담긴다고 느껴요. 거기에 짧게 한두 마디 정도 적어두고 나중에 돌아보면 사소한 기억들까지도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특히 여행을 갔을 때 침대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한 페이지씩 채우다 보면 여행이 끝날 쯤 한 권의 여행 노트가 완성되어요. 마치 독립출판물을 낸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예은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도 한 번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 볼까 자극을 받게 되네요. 아이템 추천을 받아보고 싶어요!
아기자기한 디자인보다 모던하고 미니멀한 제품을 선호해요. 그보다도 종이의 소재나 두께, 필기감, 형압 등으로 포인트를 주는 디테일을 좀 더 신경 쓰고요. 좋은 종이로 문구를 만드는 트롤스페이퍼의 에센셜 노트를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코팅하지 않아 포슬포슬한 종이 본연의 질감을 느낄 수 있고 다이어리 커버를 취향에 맞게 교체할 수 있어 질리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에요. 여러 내지 타입이 있는데 그중 활용도가 가장 높은 건 일기장 타입이 아닐까 싶어요. 날짜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매일 써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하루를 기록하기 좋은 노트예요.
그 자체로 그의 기록물인 이 장소에, 단편선의 곳곳에 찬찬히 시선을 두어본다. 세세한 스케줄을 적는 것 보다 하나의 사건이나 감정을 가볍고 러프하게 적어 내리는 것을 좋아한다던 그의 성정이 느껴져 한차례 여유를 음미해 본다.
한편 단편선의 아이템들이 과연 ‘기록’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모인 걸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해요. 이들을 묶는 또 다른 키워드가 있을까요?
사실 모바일로 스케줄을 관리하고 블로그나 SNS 같은 디지털매체를 활용하는 등 모든 기록을 아날로그한 방식으로만 풀어내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이 모든 행위가 ‘책상’이라는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상이라는 공간을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누군가는 업무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누군가는 생각을 정리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취향이 담긴 무언가를 진열하는 곳이더라고요. 그렇게 기록의 도구로 시작해 기록의 장소를 채우는 사물로 상품을 확장해 다루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예은 님의 책상은 어떨지 궁금해요! 어떤 물건들이 어떻게 놓여 있나요?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건 노트북이네요! 오거나이저, 펜트레이, 달력, 텀블러 순으로 놓여 있어요. 오거나이저에는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메모해 붙여놓아요. 귀여운 것들을 보면 능률이 오르는 편이라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메모지나 스티커 엽서도 함께 배치했어요. 책상 위가 정리되지 않으면 집중이 잘되지 않아서 펜이나 마스킹테이프처럼 작은 문구류는 꼭 트레이에 담아두곤 해요. 달력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데스크테리어에 없으면 허전하기 때문에 빼놓을 순 없는 아이템이지 싶어요.

제2장 반영
책상 위 달력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일 텐데요, 어쩌다 공주에서 단편선을 열게 되신 걸까요?
오래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진로를 처음 고민하면서 여행 온 곳이 공주였어요. 당시 공주에서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우연한 기회로 한 달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이를 계기로 공주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는데, 진로 고민과 함께 지역에서의 대안적인 삶을 생각하던 차 잔잔하고 여유로운 소도시의 모습에 여러모로 환기가 되었나 봐요. 그렇게 공주에 정착했고 여러 가능성을 보게 되었어요.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가진 곳이지만 소비할 수 있는 로컬 상품의 다양성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밤 외에는 그렇다 할 기념품이 없었고, 그런 것들을 모아 판매하는 곳은 더욱 찾아보기 어려웠죠. ‘내가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고 처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평소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여행지에서 작지만 알찬 상점들을 많이 만나본 경험이 영감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해봐도 되지 않을까’에서 ‘하고 싶다’로 빠르게 이어졌어요.
잔잔하고 여유로운 소도시 공주를 조금만 더 자랑해 주시겠어요?
공주의 자랑은 제민천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요. 깨끗하고 아름다운 제민천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운 공주의 운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거든요. 또 골목골목 숨은 카페와 책방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한국적이면서도 묘하게 아담한 일본 소도시의 느낌이 나기도 해요. 높은 건물이 없어 고즈넉한 동네의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고요. 공주를 작은 경주 혹은 작은 전주라고도 하는데 아기자기함과 차분함은 다른 곳에는 없는 공주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분들은 일전에 고민했던 지역에서의 대안적인 삶을 이미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내고 계셨어요. 그런 삶의 모습들이 단편선을 시작하는 용기가 되어주었고, 실제로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창업을 처음 해보는 저에겐 이런 점 또한 공주의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은 님 마음에 다양한 매력으로 자리 잡은 공주를 단편선에서는 어떻게 담아내고 있나요?
‘로컬리티’라고 하면 공주의 밤 같은 지역특산물만 생각되곤 하는데, 단편선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겐 단편선의 색이 담긴 무언가도 로컬로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디자인별, 재질별 내지를 골라 즉석에서 스프링 노트를 만들어볼 수 있는 제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필름 카메라로 담은 공주의 풍경 엽서를 표지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동네의 작가님이 그려주신 제민천 지도에 저의 추천 공간들을 소개하고도 있어요. 단편선에서 이 지도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고 이곳에서 구매한 노트에 여정을 기록하며 다시 단편선으로 돌아와 방명록을 씀으로써 여행의 마무리를 짓는 것까지, 제가 그리는 모습이에요.
단편선의 이야기로 조금은 들떠 보이는 그의 뒤, 창문에는 제민천의 잔물결이 반짝 일었다.

제3장 효용
‘지역을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아카이브 하는 기록 경험을 제안하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핏 듣기에 다소 생소한 이야기처럼 들려요. 예은 님이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요?
지역에서의 기억은 어떠한 물건보다도 경험으로 오래 남겨진다고 생각해요. 단편선은 단순히 상품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현재 종이를 실로 엮어 직접 수제 노트를 만들어 볼 수 있는 북 바인딩 워크숍과 원도심을 담아보는 필름 카메라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어요. 또 북 바인딩과 연계해 공주에서의 기록을 담은 진(zine)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공주에 방문하신 분들이 이 공간에서 무형의 추억을 유형화하여 기록집을 만들어보고, 지역보다도 ‘지역에서의 나’를 더욱 오래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이렇듯 다양한 기록의 경험을 제안하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공주가 예은님에게 다양한 의미로 자리 잡았듯, 단편선도 공주에 어떠한 의미가 되기를 바라실 것 같아요.
방문하시는 분들께서 ‘공주에 이런 곳이 생기다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여행객분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공주에 계신 분들에게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브랜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된 거죠. 이제는 로컬 굿즈샵, 기념품샵, 편집샵을 넘어서 지역 내 없었던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 갔으면 좋겠어요.
이미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기도 한 걸요? 절찬리 연재 중인 단편선의 인터뷰라는 단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단락을 채워주세요!
단편선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작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과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공주에서 기록의 가치에 공감하는 분들과 함께 성장을 꿈꾸면서요.
단편선을 운영하며 느끼는 즐거움과 기대들이 잘 전달되었을지 모르겠네요. 잘 전달되었기를 바라며 공주에 오실 분들께 한 번 찾아오시라는 말씀을 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단편선이라는 한 권의 책을 덮는 마음으로 처음 열고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온다. 이제는 보내줄 시간이 되어버린 서운함으로, 또한 후속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었다는 각각의 소품들도 필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들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번뜩 스치면서 못내 아쉬워지고 말았다. 아쉬움을 그대로 안은 채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edtor 박영은 illust 최시내
[이야기가 잇는 충남]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물건들을 소개합니다.
-공주 데스크 소품샵 <단편선>
오래도록 읽고 싶었던 책의 첫 장을 펼치는 설렘,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제멋대로 잔뜩 부풀어버리고 만다. 그 안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같은 생각만으로 가득 차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은 잠시 내쫓긴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이야기를 굽어보고, 헤쳐보고 때로는 만져보기도 하는 몰입의 짜릿함을 떠올려 보자. 내 삶의 여정과 닮아있는, 혹은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누군가의 기록에 삶의 진폭은 대부분은 모르는 새, 아주 가끔은 눈에 띄게 커져 있었다.
같은 마음으로 한 상점의 문을 두드린다. 종이처럼 하얀 벽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를 배경으로 다양한 소품들은 정돈된 듯 단정하게 놓여있다. 창밖으로 비치는 풍경은 삽화처럼 그 안을 꾸미고 있었다. 이 공간에 붙여진 이름은 <단편선>이다. 이들이 엮여 만들어진 이야기는 무얼까 한참 바라보며 해석해 보는 것도 좋지만, 곧바로 이 작품의 지은이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제1장 표현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단편선은 이런 곳이다!”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공주 구도심에서 “단편선”을 운영하는 진예은이라고 합니다. 단편선은 기록의 도구인 문구를 기반으로 라이프스타일 제품들을 제안하고 판매하는 상점이에요. 작은 이야기를 가진 물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각각의 이야기가 담긴 사물들이 한데 모여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기록의 도구로서 문구라.. 시선에 힌트가 있는 듯싶은데요, 기록이 예은 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나 봐요!
저는 오래전부터 수집광이었어요. 친구와 주고받았던 작은 쪽지나 공연 티켓, 여행지의 영수증 같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다 모을 정도로요. 추억이나 특별한 순간도 마찬가지로 놓치지 않고 모으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이런 작은 조각들을 노트에 붙이고 그날을 일기나 그림으로 남기는 거죠.
일상을 기록하는 또 다른 방법도 있을 것 같아요.
돌아보니 벌써 햇수로 9년이나 되었네요. 더욱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날은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요. 필름 가격이 인상된 이후로는 전처럼 자주 찍지는 못하지만요. 셔터를 누를 때 신중하고 집중하게 되는 만큼 필름 사진에는 그날의 분위기가 그대로 실리더라고요. 잘 나오지 못해도 소중한 이유가 되어줍니다.
아! 그리고 이건 정말 저만의 방식일 텐데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작은 노트를 항상 지니고 다녀요. 카페나 대중교통 등 자투리 시간에 그날 떠오르는 몇 가지 포인트들을 그림으로 그리곤 해요. 투박한 그림이지만 그때 그 순간이 가장 생생하게 잘 담긴다고 느껴요. 거기에 짧게 한두 마디 정도 적어두고 나중에 돌아보면 사소한 기억들까지도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특히 여행을 갔을 때 침대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한 페이지씩 채우다 보면 여행이 끝날 쯤 한 권의 여행 노트가 완성되어요. 마치 독립출판물을 낸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예은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도 한 번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 볼까 자극을 받게 되네요. 아이템 추천을 받아보고 싶어요!
아기자기한 디자인보다 모던하고 미니멀한 제품을 선호해요. 그보다도 종이의 소재나 두께, 필기감, 형압 등으로 포인트를 주는 디테일을 좀 더 신경 쓰고요. 좋은 종이로 문구를 만드는 트롤스페이퍼의 에센셜 노트를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코팅하지 않아 포슬포슬한 종이 본연의 질감을 느낄 수 있고 다이어리 커버를 취향에 맞게 교체할 수 있어 질리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에요. 여러 내지 타입이 있는데 그중 활용도가 가장 높은 건 일기장 타입이 아닐까 싶어요. 날짜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매일 써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하루를 기록하기 좋은 노트예요.
그 자체로 그의 기록물인 이 장소에, 단편선의 곳곳에 찬찬히 시선을 두어본다. 세세한 스케줄을 적는 것 보다 하나의 사건이나 감정을 가볍고 러프하게 적어 내리는 것을 좋아한다던 그의 성정이 느껴져 한차례 여유를 음미해 본다.
한편 단편선의 아이템들이 과연 ‘기록’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모인 걸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해요. 이들을 묶는 또 다른 키워드가 있을까요?
사실 모바일로 스케줄을 관리하고 블로그나 SNS 같은 디지털매체를 활용하는 등 모든 기록을 아날로그한 방식으로만 풀어내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이 모든 행위가 ‘책상’이라는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상이라는 공간을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누군가는 업무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누군가는 생각을 정리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취향이 담긴 무언가를 진열하는 곳이더라고요. 그렇게 기록의 도구로 시작해 기록의 장소를 채우는 사물로 상품을 확장해 다루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예은 님의 책상은 어떨지 궁금해요! 어떤 물건들이 어떻게 놓여 있나요?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건 노트북이네요! 오거나이저, 펜트레이, 달력, 텀블러 순으로 놓여 있어요. 오거나이저에는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메모해 붙여놓아요. 귀여운 것들을 보면 능률이 오르는 편이라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메모지나 스티커 엽서도 함께 배치했어요. 책상 위가 정리되지 않으면 집중이 잘되지 않아서 펜이나 마스킹테이프처럼 작은 문구류는 꼭 트레이에 담아두곤 해요. 달력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데스크테리어에 없으면 허전하기 때문에 빼놓을 순 없는 아이템이지 싶어요.
제2장 반영
책상 위 달력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일 텐데요, 어쩌다 공주에서 단편선을 열게 되신 걸까요?
오래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진로를 처음 고민하면서 여행 온 곳이 공주였어요. 당시 공주에서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우연한 기회로 한 달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이를 계기로 공주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는데, 진로 고민과 함께 지역에서의 대안적인 삶을 생각하던 차 잔잔하고 여유로운 소도시의 모습에 여러모로 환기가 되었나 봐요. 그렇게 공주에 정착했고 여러 가능성을 보게 되었어요.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가진 곳이지만 소비할 수 있는 로컬 상품의 다양성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밤 외에는 그렇다 할 기념품이 없었고, 그런 것들을 모아 판매하는 곳은 더욱 찾아보기 어려웠죠. ‘내가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고 처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평소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여행지에서 작지만 알찬 상점들을 많이 만나본 경험이 영감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해봐도 되지 않을까’에서 ‘하고 싶다’로 빠르게 이어졌어요.
잔잔하고 여유로운 소도시 공주를 조금만 더 자랑해 주시겠어요?
공주의 자랑은 제민천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요. 깨끗하고 아름다운 제민천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운 공주의 운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거든요. 또 골목골목 숨은 카페와 책방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한국적이면서도 묘하게 아담한 일본 소도시의 느낌이 나기도 해요. 높은 건물이 없어 고즈넉한 동네의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고요. 공주를 작은 경주 혹은 작은 전주라고도 하는데 아기자기함과 차분함은 다른 곳에는 없는 공주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분들은 일전에 고민했던 지역에서의 대안적인 삶을 이미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내고 계셨어요. 그런 삶의 모습들이 단편선을 시작하는 용기가 되어주었고, 실제로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창업을 처음 해보는 저에겐 이런 점 또한 공주의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은 님 마음에 다양한 매력으로 자리 잡은 공주를 단편선에서는 어떻게 담아내고 있나요?
‘로컬리티’라고 하면 공주의 밤 같은 지역특산물만 생각되곤 하는데, 단편선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겐 단편선의 색이 담긴 무언가도 로컬로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디자인별, 재질별 내지를 골라 즉석에서 스프링 노트를 만들어볼 수 있는 제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필름 카메라로 담은 공주의 풍경 엽서를 표지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동네의 작가님이 그려주신 제민천 지도에 저의 추천 공간들을 소개하고도 있어요. 단편선에서 이 지도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고 이곳에서 구매한 노트에 여정을 기록하며 다시 단편선으로 돌아와 방명록을 씀으로써 여행의 마무리를 짓는 것까지, 제가 그리는 모습이에요.
단편선의 이야기로 조금은 들떠 보이는 그의 뒤, 창문에는 제민천의 잔물결이 반짝 일었다.
제3장 효용
‘지역을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아카이브 하는 기록 경험을 제안하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핏 듣기에 다소 생소한 이야기처럼 들려요. 예은 님이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요?
지역에서의 기억은 어떠한 물건보다도 경험으로 오래 남겨진다고 생각해요. 단편선은 단순히 상품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현재 종이를 실로 엮어 직접 수제 노트를 만들어 볼 수 있는 북 바인딩 워크숍과 원도심을 담아보는 필름 카메라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어요. 또 북 바인딩과 연계해 공주에서의 기록을 담은 진(zine)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공주에 방문하신 분들이 이 공간에서 무형의 추억을 유형화하여 기록집을 만들어보고, 지역보다도 ‘지역에서의 나’를 더욱 오래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이렇듯 다양한 기록의 경험을 제안하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공주가 예은님에게 다양한 의미로 자리 잡았듯, 단편선도 공주에 어떠한 의미가 되기를 바라실 것 같아요.
방문하시는 분들께서 ‘공주에 이런 곳이 생기다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여행객분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공주에 계신 분들에게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브랜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된 거죠. 이제는 로컬 굿즈샵, 기념품샵, 편집샵을 넘어서 지역 내 없었던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 갔으면 좋겠어요.
이미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기도 한 걸요? 절찬리 연재 중인 단편선의 인터뷰라는 단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단락을 채워주세요!
단편선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작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과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공주에서 기록의 가치에 공감하는 분들과 함께 성장을 꿈꾸면서요.
단편선을 운영하며 느끼는 즐거움과 기대들이 잘 전달되었을지 모르겠네요. 잘 전달되었기를 바라며 공주에 오실 분들께 한 번 찾아오시라는 말씀을 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단편선이라는 한 권의 책을 덮는 마음으로 처음 열고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온다. 이제는 보내줄 시간이 되어버린 서운함으로, 또한 후속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었다는 각각의 소품들도 필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들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번뜩 스치면서 못내 아쉬워지고 말았다. 아쉬움을 그대로 안은 채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edtor 박영은 illust 최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