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가 잇는 충남]
방학이 있는 회사
디자인사과나무 | 박소산
작년 여름방학엔 오키나와에 갔다. 7월인데도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낮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도 없다. 커다랗고 한가한 섬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북쪽의 숲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조그만 도시에 들러 그 동네를 구경하고 커피를 마시고 마을 산책을 했다. 북쪽 마을에 도착해 몇 백 년 된 고사리숲을 걸었다. 숲 가까운 마을의 상점은 해가 덜 드는 늦은 시간에 짧게 문을 열었다. 이 가게들도 여름 방학인 셈이다.

방학이 있는 회사에 다닌다. 일년에 한 달. 서로에게 방학을 주기로 했다. 한 해가 시작될 무렵에, 언제쯤 한 달 휴가를 보낼 것인지 미리 얘기를 나눈다. 비교적 한가한 봄이나 여름을 택한다. 월급은 그대로 나간다. 아주 바쁠 때가 아니라면 세 명 분의 일을 두 명이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방학을 만든 지는 두 해째. 방학을 만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 년에 한 달 정도. 그 시간에 기대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 가기 전엔 2주간 ‘작은 집 짓기’를 배웠다. 언젠간 집을 짓는 일, 직접 몸을 써 만들어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던 일을 직접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겉핥기 수준이었지만 공구를 직접 다루며, 수많은 건축 먼지 속에서 일상을 살아볼 수 있었다. 방학이 없었으면 알 수 없었던 일이다. 함께 일하는 친구는 방학동안 오래 미뤄왔던 일을 시작했다. 매일 생업에 치여 우선 순위에서 벗어났던 일이었다. 디자인 일의 리듬과 전화와 이메일에서 잠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일상에 끌어들였다. 한 달은 충분하진 않지만,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방학을 시도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아주 작은 디자인 회사이기 때문이다. 매일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사람 두 명, 시골로 이주한 후 주로 집에서 일하며 일주일에 한 번 나와 함께 점심을 먹는 한 명.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일한다. 어렸을 땐 내가 이렇게 작은 회사에서, 그것도 지긋지긋했던 천안에서 회사를 꾸릴지 정말 생각도 못했다. 꿈과 직업은 대체로 거창한 것이어서 이곳이 아닌 어딘 가에서 하고 싶은 멋진 일을 하며 살 줄 알았다. 상상해본다. 거창한 곳에서 거창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나는 계속 쭉- 그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었을까?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서 멋진 일을 하고 있을 상상 속의 나는, 이미 지쳐 나가떨어져 다른 곳에서 자아찾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밥벌이가 되는 일이란 대체로 지난하고 지치고 어려운 것. 할수록 어렵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속하기 때문에.. 아마 난 버티지 못했을거야. 상상 속의 나는 북유럽 어딘가에서 퇴직금을 탕진하며 고민한다. 내 자아는 어디에 있을까... 어떤 일을 해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출처 – 카카오웹툰 어쿠스틱라이프
다행히도(?) 거창한 꿈과 직업을 이뤄내지 못한 현실 속의 나는 작은 지역에서 쪼꼬마한 회사에 다닌다. 10년 쯤 자아를 잊은 채 살며 알게 된 건 일의 자아는 '어디에/어떤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거다. 지금의 내 자아는 '누구와 어떻게' 지내는 가에 따라 매일 일상 속에서 나타난다. 비록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과 주로 일하고, 해로운 일은 하지 않는다. 여전히 밥벌이는 지긋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괜찮은 일로 만드는 고민한다.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말하고, 가능하다면 실제로 해보기도 한다. 더 잘 쉬기, 더 잘 놀기를 궁리한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달, 서로에게 멀어져 방학을 한다.

이 일의 일상은 비록 거창하진 않지만 꽤 만족스럽다. 자아를 찾으러 오랫동안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자아는 천안에, 우리 동네에, 쬐끄마한 2층 사무실 창문 밖 근사한 은행나무에, 매일 사치스럽게 마시는 커피숍에, 상냥하게 주고받는 이메일 안에, 힘겹게 만들어 출력한 따끈한 결과보고서 안에, 그리고 여름 방학 안에 있다.
[이야기가 잇는 충남]
방학이 있는 회사
디자인사과나무 | 박소산
작년 여름방학엔 오키나와에 갔다. 7월인데도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낮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도 없다. 커다랗고 한가한 섬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북쪽의 숲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조그만 도시에 들러 그 동네를 구경하고 커피를 마시고 마을 산책을 했다. 북쪽 마을에 도착해 몇 백 년 된 고사리숲을 걸었다. 숲 가까운 마을의 상점은 해가 덜 드는 늦은 시간에 짧게 문을 열었다. 이 가게들도 여름 방학인 셈이다.
방학이 있는 회사에 다닌다. 일년에 한 달. 서로에게 방학을 주기로 했다. 한 해가 시작될 무렵에, 언제쯤 한 달 휴가를 보낼 것인지 미리 얘기를 나눈다. 비교적 한가한 봄이나 여름을 택한다. 월급은 그대로 나간다. 아주 바쁠 때가 아니라면 세 명 분의 일을 두 명이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방학을 만든 지는 두 해째. 방학을 만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 년에 한 달 정도. 그 시간에 기대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 가기 전엔 2주간 ‘작은 집 짓기’를 배웠다. 언젠간 집을 짓는 일, 직접 몸을 써 만들어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던 일을 직접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겉핥기 수준이었지만 공구를 직접 다루며, 수많은 건축 먼지 속에서 일상을 살아볼 수 있었다. 방학이 없었으면 알 수 없었던 일이다. 함께 일하는 친구는 방학동안 오래 미뤄왔던 일을 시작했다. 매일 생업에 치여 우선 순위에서 벗어났던 일이었다. 디자인 일의 리듬과 전화와 이메일에서 잠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일상에 끌어들였다. 한 달은 충분하진 않지만,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방학을 시도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아주 작은 디자인 회사이기 때문이다. 매일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사람 두 명, 시골로 이주한 후 주로 집에서 일하며 일주일에 한 번 나와 함께 점심을 먹는 한 명.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일한다. 어렸을 땐 내가 이렇게 작은 회사에서, 그것도 지긋지긋했던 천안에서 회사를 꾸릴지 정말 생각도 못했다. 꿈과 직업은 대체로 거창한 것이어서 이곳이 아닌 어딘 가에서 하고 싶은 멋진 일을 하며 살 줄 알았다. 상상해본다. 거창한 곳에서 거창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나는 계속 쭉- 그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었을까?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서 멋진 일을 하고 있을 상상 속의 나는, 이미 지쳐 나가떨어져 다른 곳에서 자아찾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밥벌이가 되는 일이란 대체로 지난하고 지치고 어려운 것. 할수록 어렵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속하기 때문에.. 아마 난 버티지 못했을거야. 상상 속의 나는 북유럽 어딘가에서 퇴직금을 탕진하며 고민한다. 내 자아는 어디에 있을까... 어떤 일을 해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출처 – 카카오웹툰 어쿠스틱라이프
다행히도(?) 거창한 꿈과 직업을 이뤄내지 못한 현실 속의 나는 작은 지역에서 쪼꼬마한 회사에 다닌다. 10년 쯤 자아를 잊은 채 살며 알게 된 건 일의 자아는 '어디에/어떤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거다. 지금의 내 자아는 '누구와 어떻게' 지내는 가에 따라 매일 일상 속에서 나타난다. 비록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과 주로 일하고, 해로운 일은 하지 않는다. 여전히 밥벌이는 지긋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괜찮은 일로 만드는 고민한다.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말하고, 가능하다면 실제로 해보기도 한다. 더 잘 쉬기, 더 잘 놀기를 궁리한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달, 서로에게 멀어져 방학을 한다.
이 일의 일상은 비록 거창하진 않지만 꽤 만족스럽다. 자아를 찾으러 오랫동안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자아는 천안에, 우리 동네에, 쬐끄마한 2층 사무실 창문 밖 근사한 은행나무에, 매일 사치스럽게 마시는 커피숍에, 상냥하게 주고받는 이메일 안에, 힘겹게 만들어 출력한 따끈한 결과보고서 안에, 그리고 여름 방학 안에 있다.